임성한 작가야 그렇다 치고 이 민망함은 오직 배우들 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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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sar99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과거 이른바 막장드라마라고 하면 두 가지 기준이 내세워졌다. 하나는 소재의 막장이다. 이를 테면 불륜이나 패륜 같은 선정적인 소재들이 나오는 드라마들을 시청자들은 막장이라 불렀다. 이것은 다분히 지상파 시절, 가족 모두가 둘러앉아 드라마를 보던 시절의 잣대가 작용한 것이다. 지금은 소재만으로 그 드라마를 막장이라 부르진 않는다. OTT 같은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훨씬 더 자극적인 소재들이 담긴 해외 드라마들을 접하고 있는데다, 이제 가족이 둘러 앉아 TV를 보던 지상파 시절은 지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들어 막장이라고 하면 소재가 아닌 다른 하나의 기준이 그 잣대로 작용한다. 그것은 완성도의 막장이다. 개연성이 없거나, 구성이 얼기설기해 이야기가 제멋대로 튈 때 시청자들은 막장이라 부른다. 이 관점에서 보면 TV조선 <결혼작사 이혼작곡3>는 막장의 정석이라고 해도 될 법한, 완성도 부족의 서사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우선 시즌3 시작부터 배우가 교체됐다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드라마에서 배우 교체는 만일 방영 중간에 벌어진 어떤 사건에 의한 것이라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지만, 시즌제로 새로 시작할 때 본래 하던 배우가 할 수 없게 된다면 그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게 상식이다. 그건 시청자들과 일종의 약속을 한 것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들로부터 시즌제를 요구받은 많은 드라마들이 이를 실행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동일한 배우의 참여가 이뤄지지 않는 점이었던 게 사실이 아닌가.

신기림(노주현)이 죽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귀신이 되어 주변을 맴돌고, 때론 타인의 몸에 빙의되어 산자들을 괴롭히는 설정은 드라마의 장르적인 일관성을 떠올려 보면 엉뚱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귀신이 등장한다면 그런 장르거나(예를 들어 오컬트 장르 같은) 아니면 합당한 이유가 충분히 제시되어야 함에도 <결혼작사 이혼작곡3>는 그런 부분이 없다. 결국 김동미(이혜숙)를 괴롭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승천하는 것으로 신기림의 귀신 역할은 끝을 맺는다.

일종의 ‘복수극’ 방식으로 귀신 설정이 쓰인 것인데, 꼭 이런 방식으로 복수하는 내용을 그릴 필요가 있었나 싶다. 귀신 역할을 한 배우 노주현에게도 민망한 일이지만, 그가 빙의했던 신지아 역할의 박서경이나, 서반 역할의 문성호도 다소 황당한 설정이 아니었을까. 특히 귀신이 빙의된 서반이 김동미를 유혹해 집으로 데려간 후 난데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은 제아무리 연기라 해도 민망했을 장면들이다. 이 장면은 그 유혹에 넘어가는 역할을 한 이혜숙도 민망했을 대목이다.

시즌3로 오면서 인물들은 ‘뜬금없이’ 변화를 맞이한다. 송원(이민영)은 아이를 낳고 사망하고, 남가빈(임혜영)은 이혼한 박해륜(전노민)과 결혼하는가 싶더니 그를 배신하고 서동마(부배)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서동마가 이번에는 남가빈을 배신하고 뜬금없이 사피영(박주미)에게 첫 눈에 반했다고 불도저처럼 접근하고 급기야 키스까지 나눈다. 게다가 서동마가 사피영에게 반한 이유가 놀랍다. 한 병원에서 사피영의 비명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반했다는 것.

이런 일련의 변화들에 제시되는 이유들에서 그럴 법한 개연성을 찾기가 어렵다. 그것이 상식적이지가 않아서다. 그렇다면 이런 상식을 벗어난 관계의 끝없는 변화를 통해 임성한 작가가 하려는 특별한 메시지가 있는 걸까. <결혼작사 이혼작곡>이라는 제목에 담긴 것처럼 관계는 한 치 앞을 예측 못할 정도로 변화한다는 게 그 메시지일 수는 있지만, 이런 정도의 상식을 벗어난 변화가 이러한 메시지를 위한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 목적은 그래서 ‘파격을 위한 파격’으로 보인다. 이 말은 달리 하면 ‘자극을 위한 자극’이고, 지극히 시청률을 의식한 선택을 말한다. 결국 어떤 파격이 드라마 내적 개연성에 의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작가의 상업성을 위한 자의적 선택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드라마에서 작가는 신적인 존재가 된다. 마음대로 인물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휘둘림에 갑작스레 변한 인물들을 연기해야 하는 연기자들의 난감함이다. 물론 연기자들 스스로 결정해 참여한 것이지만, 제아무리 작가의 대본이라고 해도 상식을 벗어난 전개에 배우 스스로 몰입하기가 쉬울까. 과연 이 드라마의 연기자들은 자신이 연기하는 배역을 100% 공감하고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연기가 아니라 그저 인형처럼 흉내를 내고 있는 걸까. 민망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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