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서 쏘아올린 주4일제…직장인의 꿈 ‘놀금’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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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sar99

주4일 근무제를 시행하는 회사가 있다. 교육기업인 에듀윌은 2019년 7월부터 주4일제를 도입했다.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지난 2월 에듀윌로 이직했다는 박모(32)씨는 “주4일을 근무하면서 3일을 쉬다 보니 일과 삶이 확실히 분리되는 느낌이다. 업무 복귀했을 때 집중도와 효율이 올라갔다”며 “취미로 헬스를 하는데 평일 낮에 사람 없는 헬스장에 가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7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재계 등에 따르면 주 5일과 4일제의 과도기인 ‘4.5일제’도 확산하는 추세다. 금융기업인 토스는 이달부터 매주 금요일은 오전 근무만 하고 퇴근하는 방식의 4.5일제를 시행한다. 플랫폼 기업인 우아한 형제들과 여기어때는 월요일 오후 1시에 출근하는 형태로 4.5일제를 운영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박병석 국회의장을 예방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대선 화두 된 주4일제
여기에 여당과 진보정당의 대선 주자들이 앞다퉈 주4일제 도입 논의에 불을 붙이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달 27일 언론 인터뷰에서 “인간다운 삶과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주4일 근무제는 언젠가 해야 할 일”이라며 “가급적 빨리 도입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6일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 하는 낡은 근로기준법을 폐지하고 전 국민 주4일 근무제를 도입하겠다”고 포문을 연 데 이어 이 후보가 논의를 확대한 모양새였다. 논란이 되자 이 후보는 “지금 공약해서 시행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공동 논의주제로 얘기할 때가 왔다”고 덧붙였다. 법정 근로시간을 주 40시간에서 32시간까지 축소하는 내용에 대한 지지 의사는 확실히 밝힌 것이다.


노동시간 OECD 3위
주4일제를 반기는 건 주로 근로자다. 지난 8월 구인·구직 플랫폼인 사람인이 성인 415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83.6%가 주4일제에 긍정적이라고 응답했다. 주4일제 도입을 주장하는 이들은 줄어든 근로시간이 노동 생산성을 높인다고 본다. 실제 에듀윌 측은 근무시간이 줄어든 만큼 업무를 하는 동안의 몰입도와 효율성은 올라갔다고 평가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 노동자의 연간 근로시간 평균은 1908시간이다. 지난해 통계가 집계된 36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와 코스타리카에 이어 3번째로 근로 시간이 길었다. OECD 회원국 평균은 1687시간이다.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1.8 달러로, OECD 38개국 중 29번째였다. 노동 효율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대기업·중소기업 격차…임금 삭감 우려도
반면 현실적인 어려움도 제기된다. 주4일제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노동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경기 성남의 50명 규모 가정용품 생산업체 관계자는 “생산라인을 계속 돌려야 하는데 지금도 사람 뽑기가 어렵다. 고용을 늘린다는 게 말은 쉽지만 일할 사람 자체가 없다”며 “숙련도가 높은 직원이 일을 줄이면 현장 피해도 상당하다. 주 52시간 근로제로도 이미 큰 타격”이라고 토로했다. 주 52시간제나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 활성화 때도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도입에 어려움을 겪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본격 시행된 2019년 4월 1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공무원들이 퇴근하고 있다. 뉴스1

노동시간 단축이 임금 삭감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황경진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 7월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형 조선사의 사내 협력사 102곳 중 82.4%는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근로자 임금 수준이 줄었다고 답했다. 노동시간 감소 등 여파로 지난 7월 기준 ‘투잡’ 이상 근로자 수는 통계 작성 이래 최대인 56만6000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해외 시범 들어갔지만, 일부에 국한
아이슬란드가 2015년부터 주4일제를 시범 운영하고, 최근엔 전체 노동 인구의 86%가 노동시간 감축에 들어가는 등 유럽에서는 일부 국가가 주4일제를 도입하거나 시범 운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전 세계로 넓혀 보면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스페인 정부는 올해 초부터 주 32시간제를 3년간 시범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상 기업은 200~400개 정도다.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 총리는 지난해 “기업은 주4일제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까지 했다. 그러나 뉴질랜드 내에서도 일부 기업이 정부 지원을 요구하는 데다 찬반 논란이 거세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업체 규모·업종별로 상황이 다르다. 근로시간은 기업 자율에 맡겨야지 국가가 일괄적으로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며 “근로시간을 줄인다고 모든 회사가 노동생산성이 올라가지도 않는다. 라인을 돌리는 제조업체나 중소기업은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정진호 기자 jeong.jin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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