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세대 갈등 심화..”당신도 언젠가 노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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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sar99

[세종=이데일리 임애신 기자] “나이 제한을 이유로 그 어떤 회사에서도 받아주지 않습니다. 아직 사회에서 쓸모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릅니다.”

정부가 국민 세금을 들여 만드는 노인일자리에 대한 시선이 따갑다. 지난달만 해도 정부가 세금을 투입해 만든 60대 이상 고령층 일자리가 전체의 43.5%를 차지했다.

20일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계획한 65세 이상 노인일자리는 84만5000개다. 노인일자리 수는 2018년 55만4000개, 2019년 69만8000개, 2020년 77만5000개, 2021년 78만5000개로 증가했다. 노인일자리사업 국비도 2020년 기준 1조2168억원으로 2016년(4035억원) 대비 3배 이상 늘었다.

일자리는 생계와 직결되기 때문에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갈등은 사회적 문제로 번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노인일자리와 젊은층이 선호하는 일자리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 제언한다.

서울 양천구 노인복지관에 대면 프로그램 중단 안내문을 부착하고 있다. (사진=뉴스1)

수명 길어지는데 은퇴준비는 ‘NO’

2004년 저출산·고령사회 대응을 위해 도입된 노인일자리사업은 정부가 고용주가 돼 60~65세 이상 어르신이 노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일자리와 사회활동을 지원해 노인복지 향상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인구구조 변화로 노인일자리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기대여명이 매년 길어지는 가운데 696만명의 거대 인구인 베이비부머 세대(1955~1975년)가 노인층에 진입하며 고령화가 심화하고 있다. 은퇴 후 고정수입 없이 20~30년 넘게 살아야 하는데 노후 준비가 되지 않은 계층이 많은 실정이다.

통계청·금융감독원·한국은행이 발표한 ‘2021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말 기준 가구주가 은퇴하지 않은 가구 중 노후 준비가 잘 된 가구는 전체의 8.9%에 불과했다. 정부가 노인일자리를 도입해 이들의 노후소득을 일부 보전하는 이유다.

노인일자리, 사회 비용 절감 효과도

코로나로 민간기업의 채용이 급감하며 젊은층의 취업난이 심화한 가운데 정부가 노인일자리 지원을 확대하자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하지만 노인일자리의 성격은 민간 일자리와 결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노인일자리는 교통정리, 길거리 쓰레기 수거, 공공기관 안내, 방역 소독 등 단순업무에 집중돼 있고 근무 기간이 6~12개월 정도로 짧아 근로의 지속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월급여 역시 기본급이 25만~60만원 수준에 그친다. 핵심 근로층인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일자리와는 괴리가 크다.

(자료=한국노인인력개발원)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돈이지만 고령층에게는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노인일자리사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한 이유로 생계비 마련(53.0%)과 용돈마련(22.1%)이 75.1%에 달했다.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한 사람의 2019년 월평균소득은 약 7만5000원 더 높아졌으며, 경제적 빈곤으로 어려움을 경험한 비율은 22.9%로 같은 기간 8.7%포인트 줄었다.

전문가들은 노인일자리사업을 단순히 노후소득보전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노인일자리에 참여한 노인들은 건강뿐 아니라 사회관계가 개선됐고, 사회적으로도 노인빈곤 완화, 보건의료비 절감 등의 긍정적인 효과가 커서다.

일자리 질 개선 과제…디지털 일자리 발굴해야

정부의 노인일자리는 생계가 어려운 노인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역할을 하지만 안정적인 소득 기반이 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1 국정감사 이슈분석’을 통해 “노인의 소득 개선을 통한 노인 빈곤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정서적 고립을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면서도 “노인 일자리 대부분이 월 27만원을 받는 단기 알바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당선인 (사진=연합뉴스)

일자리가 비대면·디지털 분야로 전환하는 추세에 맞춰 노인일자리도 변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앞서 노인일자리사업은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다. 노인일자리사업을 수행하는 사업단 중 1회 이상 사업을 중단한 곳은 85%에 달했다. 이를 계기로 돌봄·안전·지역홍보와 관련해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노인일자리가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박경하 노인인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디지털 노인일자리 분야는 사회적 가치가 높은 일자리와 전문적인 디지털 역량이 필요한 일자리, 교육형 디지털 일자리 등에서 확대할 여지가 많다”며 “또 기술 발전과 자동화가 대체하기 어려운 돌봄·상담·교육 등에서 일자리 기회가 늘 수 있다”고 말했다.

尹정부 노인일자리사업 이어갈까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에서 노인일자리가 축소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당선인은 앞서 민간기업 중심의 일자리 창출의 중요성을 여러 차레 언급했다. 국회 관계자는 “윤 당선인이 2030 젊은세대의 사회 참여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일자리 무게의 추도 민간 활성화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인구구조와 기술 발전 등을 고려해 일자리 정책을 거시적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 등이 민간 영역의 일자리를 점점 더 많이 대체하면 공적 영역에서의 일자리 창출과 소득보장 정책이 더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생산 가능인구가 줄고 고령층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인구구조상 고령층에 대한 일자리 제공을 복지 개념을 확대해 볼 필요가 있다”며 “사회 전체적인 순기능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애신 (vamo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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