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병철 ‘전자’ 산업 진출에 구인회 ‘버럭’…선의의 경쟁으로 ‘윈윈’ 이끌어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이익이 남으니까 할라카는 거 아이가. 사돈이 논을 사믄 배 아프다 카더마는."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은 지난 1969년 사돈인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움직임에 이 같은 말을 내 뱉으며 불 같이 화를 냈다. 비료, 조미료 사업을 하던 이 회장이 LG가 주력하고 있던 전자 사업에 뛰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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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학 아워홈 명예회장이 향년 92세로 별세한 가운데 12일 빈소가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 있다. [사진=김성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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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가와 LG가가 사돈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아워홈을 설립한 구자학 아워홈 회장 때문이다. 구인회 회장의 셋째 아들인 구자학 회장은 지난 1957년 이병철 회장의 둘째딸인 이숙희 씨와 결혼했다. 두 대기업 가문의 결합은 당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구자학 회장은 이병철 회장이 탐냈을 정도로 ‘돈 냄새를 맡는 경영인’이라는 소문이 퍼져있었다. 이에 이병철 회장은 구자학 회장을 사위로 삼은 후 10여년간 제일제당 이사, 호텔신라 사장 등 주요 보직을 맡겼다.
하지만 삼성과 LG의 갈등은 1963년부터 서서히 조짐을 보였다. 이병철 회장이 사돈인 구인회 회장에게 동양TV와 라디오서울 동업을 제안했던 것이 계기였다. 이병철 회장은 TV 사업을 구인회 회장에게 넘기고 라디오 사업을 전담키로 약속했으나, 방송 사업이 더 전망이 밝다는 평가가 잇따르자 일본 출장 등을 이유로 언론 사업 재편을 차일피일 미뤘던 것이 화를 불렀다.
결국 이병철 회장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TV 경영권을 인수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구인회 회장은 "자네가 다 하게, 자네의 생각대로"라는 말을 남기고 방송 사업에서 손을 털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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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호암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80년 삼성본관 집무실에서 함께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삼성이 LG의 핵심 사업 분야인 가전에 발을 들인 것은 갈등을 증폭시켰다.
LG전자는 지난 1965년 국내 최초로 냉장고를 출시한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 흑백 TV, 1968년과 1969년에는 각각 에어컨과 세탁기를 국내 시장에 첫선을 보이며 생활 가전의 역사를 써나갔다.
그러나 삼성이 1968년 정부가 전자육성책을 발표하자 이듬해 전자산업 진출을 선언했고, LG가 강하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삼성은 삼성물산에 개발부를 설치하고 전자회사 설립 작업에 들어갔다.
이병철 회장의 장남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책 ‘묻어둔 이야기’에선 "아버지의 결정대로 일단 전자 산업을 시작하기로 했지만 진행과정은 퍽 막막했다"면서 "당시에는 반도체(IC)가 아니라 진공관을 사용하는 텔레비전을 만들 때였는데 진공관은커녕 TV 부품 하나 우리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없었다"며 당시 삼성전자 설립 초기 상황을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이 때 이병철 회장과 구인회 회장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져버렸고, 호텔신라·에버랜드 등에서 일하며 장인의 신임을 얻었던 구자학 회장도 LG로 돌아가게 됐다. 이 일로 구자학 회장의 부인 이숙희 씨는 이병철 회장의 자녀 중 유일하게 재벌가로 시집갔으나, 처가의 재산상속 서열에서는 제외됐다. 이숙희 씨는 이에 상속 회복 청구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맹희 명예회장은 ‘묻어둔 이야기’를 통해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명예회장은 "삼성이 전자 산업에 뛰어든 과정에서 꼭 한번 밝히고 지나가야 할 것이 럭키 금성(현 LG)과의 관계"라며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전자 산업을 삼성에서 시작하기로 하면서 아버지와 금성사의 구인회 회장이 이야기를 나누었던 장소에 내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마찰 없이 잘 지내던 두 집안이 경쟁심을 보인 건 동양방송을 같이 하면서였지만 외부적으로는 그리 쉽게 드러나질 않았다"며 "방송국을 하면서 은연중에 서로가 경계를 하던 시절에 전자산업 문제가 터져 나왔고, 삼성이 전자사업을 하는 것을 금성사 쪽에서 그토록 싫어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퍽 친하게 지내셨던 두 분(이병철 회장, 구인회 회장)은 이 일로 아주 서먹서먹해졌다"며 "아버지는 구인회 회장이 화를 내자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저 민망해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일로 두 분 사이는 아주 멀어졌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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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 LG 창업회장 [사진=LG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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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LG는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부딪쳤다. 지난 1992년에는 금성사(현 LG전자)와 삼성전관(현 삼성SDI)이 특허권을 둘러싸고 소송을 벌였고, 1990년대 후반에는 양사가 각각 "우리가 진정한 완전 평면 TV"라고 외치며 맞섰다.
또 2011년에는 3D TV 구현 기술 방식을 두고 서로 비판했고, 2012년에는 대형 양문형 냉장고 용량을 두고 서로가 최대라며 진실 공방을 벌였다. 2013년에는 국내 에어컨 시장점유율을 놓고 또 싸웠다. 2014년에는 LG전자 고위 임원의 삼성 세탁기 파손 논란이 발생했고,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다.
다만 최근에는 양사 모두 소모적인 공방을 벌이기 보다 기술력과 마케팅을 통한 1등 경쟁에 치중하는 분위기다. 지난 2019년 6월 라이프스타일 맞춤형 가전을 표방하며 가전 시장 트렌드를 새롭게 이끌었던 삼성 ‘비스포크’와 이듬해 10월 출시한 LG전자의 공간 가전 ‘오브제컬렉션’이 대표적 사례다. 두 업체의 관련 제품 출시 경쟁은 곧 시장 규모를 키우는 선순환 구조를 창출했다는 것이 업계 평가다.
의류 관리기도 비슷한 사례로 꼽힌다. LG전자는 2011년 세계 최초로 의류 관리기 ‘LG 트롬 스타일러’를 출시했지만 관련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에어 드레서’를 내놓으며 출사표를 던지자 시장 규모는 되레 커졌다. 실제로 국내 의류 관리기 시장은 2015년 294억원에서 2020년 3천937억원으로 5년새 13배 증가했다.
재계 관계자는 "반 세기 전만 해도 가전업계의 변방에 불과했던 한국이 글로벌 시장의 메가 트렌드를 좌우할 만큼 급성장한 배경에는 LG와 삼성이라는 가전 맞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LG와 삼성이 선의의 경쟁을 펼치면서 결국 윈윈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아이뉴스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