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선 앞두고 민주당서 ‘한전 민영화’ 논란 불거져
전력구매계약(PPA)가 민영화로 이어진다지만
정작 PPA는 신재생에너지 확대 위해 문 정부서 도입
원전·화력발전 늘리면 PPA는 전혀 필요없어
이어진 전기요금 동결로 1분기 8조 적자난 한전
자구책서 자회사 지분 51% 남기고 매각 언급
더불어민주당이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기 민영화 반대’를 전면에 내걸었습니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19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당시 전력 민영화 논란에 이어, 공항 민영화를 시도하고 있다”며 “공기업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전력, 의료, 철도, 공항 등 국가 주요 공공영역을 대기업과 외국 자본에 넘기려는 시도는 철 지난 신자유주의 논리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갸우뚱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전기 민영화 근거는 ‘전력구매계약(PPA) 확대’인데요, 현재 전력거래소에서 이뤄지는 한전 등 전력 판매기업과 발전사 간 거래를 전력거래소를 건너뛰고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발전사와 전력소비기업이 한국전력조차 ‘패싱’하고 직접 거래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직거래하더라도 송배전망 사용료 등 추가 비용을 한전에 지불해야 합니다. 한전과 전력거래소를 건너뛰고 기업과 발전사가 직거래 한다니. 민영화의 초석이라 봐도 되는 것일까요.
그런데 정작 PPA 보급 및 확대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문재인 정부에서 지난 9일까지 역점을 들이며 추진했던 사업입니다. 최초 도입도 지난해 10월입니다.
지난 2월 3일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가 맞붙었던 TV토론에서 이슈가 됐던 ‘RE100’을 기억하시나요. 이 후보가 윤 대통령에게 이와 관련한 질문을 한 뒤 윤 후보가 잘 모르면 설명하는 모습이 반복됐는데요. RE100은 2050년까지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자는 국제 프로젝트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RE100을 하려면 기업이 재생에너지를 ‘콕 집어’ 사야겠지요? 이를 위한 방안이 PPA입니다. 현재 전력 판매 구조는 원전, 화력, LNG, 신재생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생산한 전기를 한전이 일괄적으로 사들인 뒤 발전 단가의 평균을 내서 각 기업에 판매하는 방식입니다. RE100을 선언한 SK하이닉스가 재생에너지를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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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이에 지난해 4월 전기사업법을 개정하고 지난해 10월 PPA를 전면 도입했습니다. 대상은 신재생에너지에 한정됐습니다. 현 정부 역시 이 재생에너지의 PPA 보급을 확대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역시 “재생에너지만 그런 (PPA 확대) 범주에 속하고, 나머지 발전원에 대해서는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며 “지금도 하고 있는 PPA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하도록 기준을 조정하는 것을 검토한다는 뜻”이라고 밝혔습니다.
작년에 이미 허용했는데 왜 굳이 보급을 더 확대하냐고요? 재생에너지 발전 가격이 비싸 굳이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굳이 살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재생에너지의 발전 단가는 석탄, 원자력보다 훨씬 비쌉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4월 기준 원자력 발전의 정산단가는 KWh당 53원 40전, 유연탄은 162원 10전에 불과한 반면 태양광은 197원 40전, 풍력은 206원 20전입니다. 굳이 기업이 RE100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신재생에너지를 PPA라는 제도까지 이용하며 살 이유가 없겠지요. 이에 정부가 발전 사업자, 민간 중개 서비스 업체 등에 혜택을 줘서라도 PPA를 더욱 활성화하겠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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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재생에너지도 한전과 전력거래소가 독점 판매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문이 생깁니다. 하지만 한전 입장에서는 재생에너지 발전에 나설 이유가 없습니다. 비싸거든요. 적자에 시달리는 한전 입장에서는 화력, 원자력 발전을 활용하는게 훨씬 낫습니다. 한국전력의 전력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3만 1000GWh로 총발전량의 5.6%에 그칩니다. 같은해 한국전력의 제조업 기업에 대한 판매전력량인 24만 8000GWh에 크게 못 미칩니다. ‘탈원전’과 함께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노리는 민주당이 PPA라는 카드를 먼저 꺼냈던 이유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PPA가 싫다면 그냥 원전을 더 늘려서 한국수력원자력과 한전이 전력을 독점 판매하면 되는 것이고 어쩌면 이 방안이야 말로 국민의힘이 더 원할 수도 있다”며 “아무리 선거를 앞뒀다지만 PPA를 두고 전기 민영화라고 민주당이 주장하는 것은 좀 아니지 않느냐”라고 혀를 찼습니다. 탈원전·재생에너지 보급에 앞장서고 있는 양이원영 민주당 의원은 “한전이 독점하고 있는 판매시장은 개방이 필요하다”며 “전력판매시장은 누구나 어디서나 전기판매가 가능하게 ‘에너지민주주의 시장’으로 하면 재생에너지가 보다 빠르게 늘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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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우려되는 것은 1분기에만 8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한 한전의 자구책입니다. 한전은 18일 국수력원자력, 발전 자회사 등 10개 사와 ‘전력그룹사 비상대책위원회’를 개최하고 6조 원 규모의 자구책을 발표했습니다. 전력 자회사 출자 지분 매각으로 8000억 원, 해외 진출 사업의 구조조정으로 1조 9000억 원 등 6조원을 마련한다는 계획입니다.
지분매각은 곧바로 민영화 논란을 부를 수 있습니다. 한전이 51%의 지분만 남기고 4000억 원 규모(14.77%)의 지분을 매각하겠다고 밝힌 한전기술은 원자력발전소의 설계, 사업 관리를 담당하는 업체로 현 정부의 원전 해외 수출과 맞물려 가치가 더 늘어날 것으로 관측됩니다. 실제 한전 해외원전사업처는 지난달 영국 현지에서 산업에너지부와 만나 원전 건설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습니다. 한전은 또 비상장 자회사 지분은 정부와 협의해 상장 후 매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공개적으로 매각 계획을 밝힌 자회사를 상장했을 때 제 값을 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며 굳이 괜찮은 회사를 매각할 이유가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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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의 적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국제 에너지가격 폭등과 더불어 문 정부의 전기요금 동결과 탈원전 정책에서 비롯됐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전기요금을 동결하다가 문재인 전 대통령 퇴임 직전 대통령 선거 이후인 4월과 9월에 전기료를 올리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는 “문 전 대통령은 막상 본인 임기 때는 연료비 연동제를 무력화하면서까지 전기료를 묶어놓았다가 새 정부 출범 이후 올라가도록 발표했다”며 “한전과 윤석열 정부 모두 손발이 묶인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정부 관계자는 “한전 적자와 관련해 자구책 뿐 아니라 전기요금 인상, 세금 투입, 회사채 추가 발행 등을 포함한 모든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면서도 “알짜 자산·지분매각 등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세종=우영탁 기자 ta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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