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엔진결함 공익제보 5년..그에게, 한국엔 무엇이 남았을까

Photo of author

By quasar99

[경향신문]

미국 비영리 단체인 ‘기만에 맞선 납세자 교육펀드(TAFEF)’에서 ‘올해의 공익제보자상’을 수상한 김광호씨가 지난 26일 경기 용인시 죽전도서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씨는 2016년 경향신문을 통해 현대차 세타 엔진 결함을 내부고발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2016년 현대차·기아의 세타2 엔진 결함을 외부에 알린 김광호씨(59)가 지난 14일 미국의 비영리 단체인 ‘기만에 맞선 납세자 교육펀드(TAFEF)’로부터 ‘올해의 공익제보자상’을 수상했다. 미국에서 매년 세금 낭비를 막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내부고발자에게 주는 상인데 외국인이 수상한 것은 이례적이다. TAFEF는 “김씨는 자동차 수백만 대의 운전자들을 엔진 결함으로 인한 위험에서 보호하고, 수십억 달러의 수리비가 운전자에게 전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용기를 냈다”고 밝혔다.

김씨는 2016년 8월 미국 교통부(DOT)에 회사가 세타2 엔진 결함을 알고도 숨겼음을 증명할 내부 자료를 전달했다. 이를 통해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조사를 벌였고 현대차·기아 자동차 수백만대가 리콜됐다. 지난해 11월 현대차·기아 미국법인은 늑장 리콜에 대해 총 2억1000만 달러(약 2465억원)의 민사 위약금을 내기로 미국 정부와 합의했다. 김씨는 미국의 내부고발자 보상 프로그램에 따라 2430만~4110만 달러(약 285억~483억원)의 보상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온라인으로 진행된 ‘기만에 맞선 납세자 교육펀드(TAFEF)’의 ‘올해의 공익제보자상’ 시상식. 김광호씨 제공

지난 26일 경기 용인시 죽전도서관에서 김씨를 만나 공익제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김씨는 2015년 현대차에서 리콜을 결정하는 품질전략팀에서 일하다 세타2 엔진 차량의 문제를 알고도 회사가 이를 축소하는 데 문제의식을 느꼈다. 그는 “엔지니어의 자부심을 송두리째 빼앗긴 경험이었다”며 “이를 묵인하는 것은 범죄행위에 동참하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8월 회사 감사팀에 먼저 제보했다. 하지만 1년동안 조사도 이뤄지지 않고 묵살됐다. 그는 “리콜은 아무리 적은 액수라도 회장님께 보고가 됐고, 이를 의식해 리콜을 축소하는 문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외부 제보로 “내몰렸다.” 2016년 8~10월 미국에 자료를 전달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경향신문·MBC, 국토교통부에 제보해 문제를 알렸다.

이후엔 ‘예상대로’ 시련이 닥쳤다. 회사에서 해고, 소송을 당했고, 자택 압수수색을 2번 당해 노트북, 휴대전화를 빼앗겼다. 재취업을 시도했지만 받아주는 회사가 없었다. “내부고발자란 ‘빨간딱지’가 붙으니 안되더라”고 했다. 그가 2017년부터 4년동안 집 근처 죽전도서관으로 출근하는 이유다. 2018년 청렴교육 전문강사 자격을 취득해 한달에 한두번 공무원 상대로 강연이라도 했는데, 코로나19가 퍼지면서 지난해부터 이 강연마저 10분의1로 줄었다.

미국 비영리 단체인 ‘기만에 맞선 납세자 교육펀드(TAFEF)’에서 ‘올해의 공익제보자상’을 수상한 김광호씨가 지난 26일 경기 용인시 죽전도서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김씨는 한국의 공익신고자보호 제도에 대해 “공익신고자 ‘보호’라는 미명 하에 그냥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보호라는 게 크게 복직과 보상인데, 한국 사기업은 복직이 의미가 없다. 한국 기업 문화에서 그 회사에 어떻게 다시 다닐 수 있겠나”라고 했다. 그 역시 2017년 현대차에 복직하자마자 바로 퇴직했다. 그는 “그렇다면 제대로 된 보상이 있어야 내부고발을 하려는 사람에게 동기부여가 될텐데 한국은 보상이 너무 적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는 공익제보로 인한 정부 수익금이 높아질 수록 보상비율은 20%에서 4%로 낮아진다. 보상금도 30억원이 최대다. 미국은 기여도에 따라 10~30%로 보상 비율이 정해지고 상한액도 없다. 애초에 보상의 모수가 되는 정부 과징금도 한국보다 미국이 훨씬 크다. 지난해 6월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보상비율을 30%로 단일화하고 상한선을 없애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국무회의를 통과하지 못해 무산됐다.

그래도 김씨는 “내 제보 후 ‘결함은 어차피 숨길 수 없다, 누구든 외부에 제보할 수 있다’고 생각이 바뀌고, 국내 자동차 리콜이 크게 늘어난 것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국내 자동차 리콜 대수는 2003~2016년 연평균 57만대였는데, 2017년 이후 올해까지 매년 200만대를 넘겼다.

김씨의 남은 꿈은 미국에서 받은 보상금으로 자신의 활동을 알리고 국내 공익제보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그는 “호루라기재단과 함께 할 공익제보전략연구소를 만들어 공익제보자를 지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미덥 기자 zorro@kyunghyang.com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