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엔 김범석 전문기자]
MBN ‘불타는 트롯맨’은 불꽃 튀는 경연보다 한 개인의 과거 일탈과 이력 때문에 한층 더 조명(?)받았다. 유력한 1위로 꼽히던 황영웅의 폭행 전력이 종합세트처럼 세상에 알려지며 추문에 휩싸인 것이다. 피해자와 목격자 관점에서 웬만하면 침묵을 택할 법도 한데,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피날레를 장식할 그의 모습을 차마 눈 뜨고 볼 순 없다는 강력한 의지가 발동한 듯싶다.
이번 사태의 여론을 결정적으로 악화시킨 건 궁지에 몰려 가드를 올리고 있던 황영웅이 ‘우승 상금을 전액 기부하겠다’고 한 발언이었다. ‘돈 때문에 출연한 거 아니다. 제게 목숨 같은 노래만 부르게 해달라’는 간곡한 절규였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은 맥락도 안 맞고 초점이 나간 이 멘트에 대해 ‘김칫국 드링킹도 유분수이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선 넘네’ 싶었을 거다.
필자는 이 대사를 공동 집필한 누군가가 있을 것이란 데에 한 표다. 아무리 맷집 좋고 멘탈이 강하다 해도 오디션 출연자인 아마추어 황영웅이 이런 대담한 발언을 꺼내기엔 여러모로 경험이 적기 때문이다. 많은 엔터 관계자들은 ‘불타는 트롯맨’의 사령탑 서혜진 PD 겸 대표를 주목하고 있다. SBS ‘스타킹’을 비롯해 TV조선에서 트로트 붐을 조성한 국내 최고의 예능 미다스의 손.
유력한 근거는 서혜진 대표의 외주제작사와 톱7이 프로그램 종영 후 거의 동업에 준하는 계약이 맺어진다는 사실이다. 피 말리는 서바이벌을 거쳐 극적으로 우승자를 가려내며 시청률 장사만 하는 게 아니라 톱7을 관리하며 일정 기간(통상 1년) 전속 계약하는 것이 요즘 종편과 외주사의 새로운 수익 모델이다. 공연은 별도 회사를 내세우기도 하지만, 방송 출연은 한 곳으로 몰빵하는 배타적 독점권이다.
임영웅 이찬원 등 ‘미스터 트롯’ 출신들도 모두 이 같은 공식을 거친, 서혜진 PD의 작품이었다. 이들은 1년간 자신을 발굴해준 TV조선에 보은하듯 틀면 나와야 했다. 그런데 이게 서로에게 나쁘지 않다. 가수들은 방송 감각을 익히며 팬덤을 확장하고, 방송사는 4070 시청자를 잡으며 광고를 붙이니 쏠쏠한 윈윈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자본주의에선 초과 수익이 나는 곳에 반드시 경쟁자가 출몰한다는 사실. MBN이 거액을 주고 서혜진 PD와 계약했고 그 결과 ‘불타는 트롯맨’으로 창사 이래 단일 프로로 최대 수익을 낼 전망이다. 자신의 레이블을 갖춘 서혜진 PD로선 돈방석이나 다름없는 제2의 임영웅이 될 황영웅을 어떻게든 안고 가야 했지만, 촛불에서 횃불로 변해가는 악화일로 여론 앞에서 더는 황영웅을 지켜주지 못한 것 같다.
항간에선 손절 타이밍을 놓쳤다고도 하지만, 이들에겐 17일 동안 무를 단칼에 베기보단 계속 미끼를 던지며 간을 보는 전략이 훨씬 유효했을 것이다. 우승 상금을 포기하자, 1만 명의 팬들을 움직여보자, 바이럴에 좀더 신경쓰자, 오디션에선 일단 빠지고 나중에 투어 공연에 합류하자 등등.
흥미로운 건 임계점에 도달한 제작진이 오른팔 같았던 황영웅을 손절한 것처럼 TV조선과 SBS도 황영웅 사태를 유독 비중 있게 다뤘다는 점이다. 특히 서혜진 PD의 친정 격인 SBS는 ‘궁금한 이야기 Y’를 통해 황영웅의 추가 제보를 받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피해자와 맘카페 저격 글에 어떻게든 버티던 제작진이 지난 3월 3일 백기 투항을 결심한 게 바로 SBS 때문이라는 뒷말이 나온다. 평판 관리 잘못하면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살벌한 세상이란 걸 이번 사태가 보여줬다.
(사진=‘불타는 트롯맨’ 황영웅/MBN 제공, 서혜진 크레아 스튜디오 대표/TV조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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