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성원 한상총련 사무총장
대출 한도 늘려주기보다 매출 증대 위한 도움 필요
“정부가 한 번이라도 자영업자를 위해 정책을 편 일이 있었나요. 그나마 유일하게 도움이 된 게 ‘지역화폐’ 사업이었는데 이걸 중단하겠다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난 23일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한상총련) 사무총장을 만났다. 한상총련 등 80여 개 자영업·소상공인 단체는 정부의 내년도 지역화폐 발행지원 예산 축소 결정을 비판하며 지난 2일부터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회원들은 번갈아 농성장을 지켰는데, 이날은 이 사무총장이 자리하는 날이었다. 광화문의 아침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날이기도 했다.
그는 “정부의 지역화폐 사업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에게 지금으로는 거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했다.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한 지역화폐는 해당 지자체에 있는 자영업자 가맹점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데, 지역화폐 발행이 늘면 그만큼 자영업자들의 매출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지역화폐를 발행할 때 정부와 지자체 예산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5만원을 내면 5만5000원어치 지역화폐 받아 사용할 수 있는데 추가되는 5000원(10%)이 세금이다. 약 3500원(7%)는 국고보조금으로 지원하고 나머지 1500원(3%)가량은 지자체가 부담한다. 이 혜택을 보기 위해 지역민들도 기꺼이 카드 대신 지역화폐를 사용한다. 만약 정부가 관련 예산을 줄이면 부담을 느낀 지자체는 지역화폐 발행을 줄일 가능성이 크다. 타격은 골목 상인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 8월 31일 ‘2022년 예산안’에서 지역화폐 예산을 올해 1조522억원에서 내년 2403억원으로 77.2% 감축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인해 한시적으로 예산을 늘렸지만,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고 판단해 줄인다는 게 골자였다.
정부는 지역화폐 지원 사업이 ‘한시적’ 이었다는 입장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너무 어려워서(지역화폐 발행을) 한시적으로 20조원까지 해주면서 내년에는 (늘렸던 것을) 정상화하는 과정으로 6조원으로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예산을 줄였다는 비판이 계속되자 “6조원은 정부의 할인 지원이 뒷받침되는 지역화폐가 6조원이란 뜻이고 나머지는 지자체가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성원 사무총장은 “지역화폐 발행을 줄이면 소비자는 대형마트로 발길을 돌리고 영업에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의 부담은 커질 것”이라고 했다. 지역화폐 활성화를 통해 소비자를 골목 상권으로 불러 모았는데, 이 효과가 사라진다는 설명이다. 그는 “코로나 사태에도 대기업과 대형마트는 온라인 비즈니스와 배달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덩치를 키웠다”며 “이런 상황에서 자영업자들의 매출을 조금이나마 늘릴 수 있는 혜택을 뺏으면 경쟁할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이 사무총장은 또 “정부가 자영업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꼭 묻고 싶다”고 했다. 지역화폐 사업이 자영업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자영업자를 위한 다른 정책을 생각하는 게 있는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지역화폐 사업을 상시 지원하면 안 되는 이유와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화폐는 정말 자영업자에게 도움이 될까. 이성원 사무총장은 “그렇다”고 했다. 정부가 1조~2조원의 예산을 풀면 지자체는 20조원 가까운 지역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데, 이 돈이 지역에서 소비된다는 것이다. 지역화폐 특성상 대형마트 등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자영업자의 매출로 직결된다는 뜻이다.
특정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화폐가 일반화되면 소상공인들의 매출 증대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도 이 사무총장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지역 내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 등으로 향하는 소비자가 골목 상권에서 소비를 늘리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매출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자영업자들은 거리두기나 영업제한으로 손해를 봤는데 정부는 제대로 된 손실보상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지역화폐 사업을 통해서라도 이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반발을 우려했는지 정부는 23일 소상공인 대출 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코로나19에 따른 인원·시설운영 제한방역조치로 매출이 급감한 소상공인에게 연 1% 금리로 최대 2000만원까지 대출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은 ‘빚 위에 빚’을 더하는 정책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낮은 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게 한다지만, 결국 이자 부담을 져야 할 ‘빚’이라는 것이다. 이 사무총장은 “코로나 사태에서 많은 소상공인이 대출로 견뎌왔다”며 “한도까지 대출을 받아 더 늘릴 수도 없는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그 정책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영업자 수를 줄여 경쟁을 완화하고 이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실제 한국경제연구원 자료를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35개국 가운데 한국의 자영업 비중은 24.6%로 상위 6위 수준이다. 한국보다 자영업 비중이 높은 나라는 콜롬비아·멕시코·그리스·터키·코스타리카다. 영국(15.3%)·프랑스(12.4%)·일본(10%)·독일(9.6%) 등 선진국은 대체로 한국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이에 대해 이 사무총장은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대책”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만든다는 ‘좋은 일자리’를 30년 동안 반찬을 만들어 팔던 사장님에게 주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좋아서 자영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벼랑 끝에 내몰려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 많다. “정부가 소상공인·자영업자가 살아날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