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대학로에서는 수많은 연극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그 연극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기자말>
[차원 기자]
▲ 지난 2일 서울 성북구 극발전소301 연습실에서 연습 중인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배우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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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창립 이후 꾸준한 무대를 이어오고 있는 지공연 협동조합(이사장 권남희)이 일곱 번째 공연이자 첫 번째 앵콜공연인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하타사와 세이고 작, 정범철 연출)로 돌아왔다. 작년 공연에서 16회 전 공연 매진을 달성한 기록적인 작품이다. 한 역할에 두 명의 배우가 있는 더블캐스트다. 지공연 협동조합은 ‘지속가능한 공연을 위한 공연 예술인 협동조합’이라는 의미로, 40대 이상의 베테랑 중견 배우들로 구성돼있다.
작품은 실제 학교 폭력 사건을 모티브로 했으며, 명문 중학교에서 한 학생의 자살 이후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들의 부모들이 학교에 소집돼 벌어지는 일들이 줄거리다. 따라서 연극에 학생은 나오지 않는다. 대신 부모들의 대화를 통해 학교 폭력, 그리고 인간의 내면을 보여준다. 지난 2일, 서울 성북구 극발전소301 연습실에 방문해 배우들의 연습 장면을 지켜봤다. 아직 연습 단계임에도 배우들의 연기는 대단했다.
가해 학생 ‘모리사키 시노 부모’ 역을 맡은 장명갑, 이정인 배우는 어떤 일을 해서라도 아이와 학교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가해자 부모의 모습을 훌륭하게 소화한다. 가해 학생 ‘하세베 미도리 부모’ 역을 맡은 김필, 김미준 배우도 마찬가지. 특히 부부가 결국 충돌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가해 학생 ‘헨미 노도카 조부모’를 맡은 맹봉학, 전소현 배우는 다른 가해자 양육자들과는 약간 다른 모습으로 극에 새로운 긴장감을 준다.
‘야시마 레이라 모’ 역의 김루시아 배우, ‘시바타 아이리 모’ 역의 권기대 배우도 내 아이가 이런 사건의 가해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애써 피하려는 양육자의 모습을 잘 연기하고, 피해 학생의 어머니 ‘이노우에 미치코 모’ 역을 맡은 차희 배우는 감정을 쏟아내는 연기로 사건을 실감케 한다. 한편 그런 학부모들 사이의 ‘교장’ 역은 박채익 배우가, ‘학생주임’ 역은 권남희 배우가 연기한다. 중심을 잡아가며 이성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노력하지만, 감정적인 모습도 드러내는 인물의 연기를 예민하게 해낸다.
‘2학년 3반 담임’ 역을 맡은 이 캐스팅의 막내 김효진 배우는 막힘없는 호흡으로 없어서는 안 될 연기를 선보이고 ‘편의점 사장’ 역을 맡은 우연호 배우는 짧은 등장이지만 강한 인상으로 극의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연습이 끝난 후, 지공연 협동조합의 이사장이기도 한 학생주임 ‘하라다 모이치’ 역 권남희 배우와 극발전소301의 대표이기도 한 정범철 연출을 인터뷰했다.
▲ 인터뷰에 응한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학생주임 ‘하라다 모이치’ 역 권남희 배우, 정범철 연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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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배우는 “연극을 준비하며 ‘우리 아이는 왕의 DNA를 가졌다’고 이야기한 교육부 사무관 갑질 사건(관련 기사: 교사들도 겁내던 ‘왕의 DNA’ 교육부 직원 자녀… 담임 ‘독박교육’ 논란)을 떠올렸다”면서 “연극에 등장하는 부모들도 모두 마음속으로는 ‘우리 자식만은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극에 등장하는 가해자의 양육자들을 보며, 최근 일어나고 있는 사태에 관해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연출도 “올해 학부모 갑질 사건이 많이 문제가 되며, 공연을 다시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고 밝혔다.
실제 이런 일이, 나의 아이가 끔찍한 사건의 가해자가 된 사건이 벌어지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까. 권 배우는 “양육자의 반응들이, 사실 모두 우리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그 의식(내 아이만큼은 아닐 거라는 것)의 최대치가 발현된 것”이라며 “관객들도 함께 ‘내가 그런 상황이면 어떤 모습을 보일까’ 질문을 던지고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정 연출은 “나도 아들이 한 명 있다”면서 “만약 가해자 입장이 됐다면, 부모로서 잘못 가르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 연출은 또 “제목에서 드러나듯,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는 말처럼 부모들이 먼저 반성해야 하고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작가는 잘하고 싶었던 것 같다”면서 “아이들의 문제이기 전에 부모들의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그 부모들의 진짜 ‘얼굴’을 보여줌으로써, 그 얼굴을 보며 관객들이 느낄 수 있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자기 자식이기 때문에, 잘못을 저질러도 무조건 감싸기만 하는 부모의 태도는 잘못된 자녀 교육 방식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권 배우는 “많은 관객분들이 보시고, 함께 공감하고 같이 분노하셨으면 좋겠다”며 “각 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각 역할이 가지고 있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관찰하다 보면 긴장감과 몰입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극은 학교 폭력이 주제지만 이기심, 추악함, 확증편향, ‘내 새끼 지상주의’ 등 인간 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니 부모 얼굴’을 어느 자화상보다 세밀하게 표현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가 떠오르기도 한다. 연기력이 보증된 배우들의 연기는 역시 믿고 볼 만 하다.
▲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포스터 |
ⓒ 지공연 협동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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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공연정보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대학로 미마지아트센터 물빛극장 2023.11.08(수)~11.19(일) 월요일~목요일 19:30 | 금요일 16:00, 19:30 | 토요일 15:00, 18:00 | 일요일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