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사장3’ PD가 차태현·조인성에 보낸 편지 입수..미국 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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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sar99

[OSEN=하수정 기자] tvN 예능 ‘어쩌다 사장3’가 최고 시청률을 찍은 가운데, 위생 논란이 불거져 뜻하지 않은 구설수에 휩싸였다. 이 과정에서 사장즈와 알바생들이 언어 소통에 불편함을 겪어 ‘굳이 미국 한인 마트까지 가야했나?’라는 지적 등이 나왔다. 

그러나 시즌1부터 시즌3까지 연출을 맡은 류호진 PD가 미국 촬영 직전 팀원들에게 공유한 실제 편지를 살펴보면 왜 그들이 미국에 갔는지 알 수 있다. 메인 출연자 차태현, 조인성을 비롯해 모든 제작진에게 편지를 보냈고, 이 안에는 류호진 PD가 ‘어쩌다 사장3’ 촬영을 앞둔 솔직한 마음과 기획의도 등이 담겨 있다. 해당 편지를 OSEN이 단독으로 입수했다.

차태현과 조인성이 열흘간 운영 중인 한인 마트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 마리나 시티에 위치해 있다. 류호진 PD는 미국의 조용한 농촌 지역 ‘마리나’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민사의 초창기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갔고, 왜 이런 마을에 한국인들의 커뮤니티가 만들어졌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왼쪽부터 배우 박병은, 차태현, 류호진 PD, 윤인희 PD, 조인성

류호진 PD는 “2023년 현재, 마리나에 남아 있는 1세대 이민자의 수는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고령이고 세상을 떠난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 곳에서 나이 든 사장님이 마을에서 없어선 안될 한인 슈퍼를 주 7일 경영하고 있습니다. 김밥 한 개에 2달러, 직접 담그는 김치와 반찬들, 주 7일 열려 있는 이 가게가 있어서 이곳의 한인들, 그리고 아시아인들이 고향의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라며 “24년전 다른 한인 어른에게 이 가게를 물려 받았다는 그는, 정작 자신이 가게를 누구에게 넘겨줘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곧 일흔이 됩니다”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어 “모든 것이 그 자리에 영원히 존재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때 어딘가에 뭔가가 있었다는 것,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 그걸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요”라며 “언젠가 사라져버릴 일상의 모습을 배우의 몸과 얼굴로 기록해 두는 것, 두 분이라면 가능할 그런 일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라며 차태현과 조인성에게 한국이 아닌 미국행을 제안한 이유를 털어놨다.

방송 관계자들에 따르면, ‘어쩌다 사장3’는 총 13개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으며, 앞으로 공개될 에피소드를 통해 미국에 간 진짜 이유와 PD의 기획의도 등이 내용 곳곳에 묻어날 거라고.

마지막으로 류호진 PD는 시즌3를 끝으로 ‘어쩌다 사장’이 완전히 종영된다는 사실도 알렸다. 

그는 “지금은 외국인들조차 김치가 떨어지면, 마트 카운터에 한참을 기다렸다가 사서 갑니다. 60년의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을까요. 지나간 사람들에게 무엇을 고맙다고 말할 것이며, 앞으로 올 사람들에게 무엇을 선물해야 할까요”라며 “나는 고단할 것이 틀림없는 우리의 마지막 시즌이, 그간 해 왔던 작업의 뜻깊은 마무리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라며 편지를 끝맺었다.

한편 최근 김밥의 위생 논란과 관련해 제작진은 “식당과 김밥 코너를 함께 운영했던 만큼 위생 관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으나, 마스크 착용이 미비했던 점 등 부족한 부분이 발생하여 시청자분들께 염려를 끼치게 됐습니다. 이에 깊은 사과를 드리며, 이는 전적으로 제작진의 불찰임을 말씀 드립니다”라며 “이번 시즌 저희 프로그램은 모든 내용이 미국에서 촬영됐고, 이에 현지의 복잡한 위생 규정과 관련법을 철저히 준수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부분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짧은 시간 내에 사건을 요약해야 하는 방송의 속성으로 인해 위생 관리에 대한 연기자들의 노력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점도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사과했다. 향후 편집으로 지적 사항을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다음은 OSEN이 단독으로 입수한 류호진 PD가 쓴 편지 전문-

어쩌다 사장 3 – 마리나에서 온 편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LA까지, 태평양을 바라보는 장엄한 해안선을 따라 끝없이 도로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길의 중간 쯤, 한적한 모래언덕 너머 마리나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아침마다 안개가 자주 끼는 이곳은  채소와 딸기 농사를 업으로 삼은 조용한 농촌 지역입니다.

이 외진 미국의 소도시에, 한국 사람들이 제법 모여 살고 있습니다. LA나 뉴욕 같은 대도시 근교라면 몰라도, 왜 이런 마을에 한국인들이 커뮤니티를 만들게 된 걸까요. 그 사연은 이민사의 초창기라고 할 만한,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50년대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군들은 한동안 한반도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 중 동두천에 주둔하고 있던 미 육군 7사단은, 1974년 주한미군 감축 계획에 따라 본국으로 돌아갈 것을 통보 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주둔하게 될 새로운 장소가 캘리포니아 ‘마리나’였습니다.

7사단은 한국에서의 긴 주둔을 끝내며, 상당수의 한국인을 미국으로 데려오게 됩니다. 군인의 아내, 부대에서 근무하던 사람들. 이들은 하루 아침에 한국을 떠나, 황량한 캘리포니아의 바닷가에 처음 정착하게 됩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음식도 맞지 않고, 연락도 쉽게 취할 수 없는 낯선 땅에서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만들며 적응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곧이어 1970년대 후반 이민의 물결이 일어납니다. 먼저 온 사람들은 가족과 친지들을 미국으로 초청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군과 결혼한 여성은 한국에 있던 남동생을, 언니를, 부모님을 미국으로 초청합니다. 맨손으로 이민 온 그들을 기다리는 건 언어의 장벽. 단순하고 반복적인, 거친 일들 뿐이었지만… 일자리가 부족하고 가난했던 조국에서 삶의 방편을 찾느니, 미국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게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 마을로 건너왔습니다. 적응에 성공해 이곳에서 기반을 마련한 사람도 있었지만, 더러는 적응에 실패해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미국에 대하여 꿈꾼 것과 실제로 미국에서 겪게 된 일이 달랐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리하여, ‘어쩌다 온 사람들’, ‘어쩔 도리가 없었던 사람들’만이 이 땅에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새로운 땅에 자리를 잡아 가면서, 마리나는 대도시가 아님에도 독자적으로 커다란 한국인 커뮤니티를 가진 특이한 곳이 되었습니다. 전성기에는 골목마다 뛰어노는 한국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고, 한국 잡화점과 식당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1994년 군축 계획에 의해 미군 7사단이 해체되고 관계자들이 미국 각지로 흩어지면서, 마리나의 한국인 커뮤니티도 서서히 쇠락해 가기 시작합니다. 부대를 따라 떠날 사람들은 떠났고, 줄어든 일자리와 나빠진 경기로 인해 이곳을 등진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이곳에 남은 사람들은 묵묵히 일하며 자녀들을 키우고, ‘어쩌다 주어진 삶’을 계속해서 이어 나갔습니다. 

2023년 현재, 마리나에 남아 있는 1세대 이민자의 수는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고령이고 세상을 떠난 분들도 많습니다. 한해 한해 보이는 분이 줄어든다는 말을 마을 사람들은 종종 합니다. 2세들은 더 좋은 사업의 기회를 찾아 미국 곳곳으로 흩어졌고,  떠나지 않은 사람들의 자녀인 3세들도 대체로 큰 도시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뒤 그곳에서 정착해 돌아오지 않습니다. 

남아 있는 어른들은 자녀들을 사랑하지만 그들이 이곳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자녀가 얼마나 성실하게 공부했으며, 얼마나 좋은 교육을 받아 좋은 직장을 가지게 되었는지, 떳떳이 미국 사회의 주류가 되었는지를 자랑스러워 합니다. 그들은 아들 부부, 딸내외의 사진을 보여주기도 하고, 손주의 동영상을 핸드폰에 저장해 놓고 소중하게 반복해서 재생하곤 합니다.  

그들은 언어의 문제 때문에 자신의 자녀들과 깊은 이야기가 통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영어가 서툴고, 자녀들은 한국어를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마리나는 이제 한국과는 큰 관련이 없는 캘리포니아의 평범한 농촌으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올 봄에 한인장로교회의 청년부가 문을 닫았고, 올 8월에 마을에 마지막 남은 한인 피아노 학원이 문을 닫았습니다. 반세기 동안 독특한 배경 속에 이어졌던 민족 공동체가 서서히 자취를 감추어 가는 마지막 석양의 순간에 우리는 이 마을을 방문하게 됩니다. 

그런 곳에서 나이든 사장님이 마을에서 없어선 안될 한인 슈퍼를 주 7일 경영하고 있습니다. 김밥 한개에 2달러. 직접 담그는 김치와 반찬들. 주 7일 열려 있는 이 가게가 있어서 이곳의 한인들, 그리고 아시아인들이 고향의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24년전 다른 한인 어른에게 이 가게를 물려 받았다는 그는, 정작 자신이 가게를 누구에게 넘겨줘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곧 일흔이 됩니다. 그러나 40년 된 한인 마트를 그가 정리하게 될 무렵이면, 발달한 물류와 대형 한인 마트들로 인해서 더 이상 이 가게가 유지될 필요가 없을 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김치도 라면도 배추도 어디서든 구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그 자리에 영원히 존재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 때 어딘가에 뭔가가 있었다는 것.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 그걸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요.  언젠가 사라져버릴 일상의 모습을 배우의 몸과 얼굴로 기록해 두는 것. 두 분이라면 가능할 그런 일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덧. 처음에 미국에 온 한국인들은 김치를 구할 수 없어서 양배추를 소금에 절여 먹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것은 금세 잊지만 어떤 것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합니다. 한국인이 수십 년 타지에 살아도 끝내 버리지 못하는 것들만이, 이 가게의 좁은 선반에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은 무엇일까요. 왜 그렇게 된 걸까요.

덧덧. 지금은 외국인들조차 김치가 떨어지면, 마트 카운터에 한참을 기다렸다가 사서 갑니다. 60년의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을까요. 지나간 사람들에게 무엇을 고맙다고 말할 것이며, 앞으로 올 사람들에게 무엇을 선물해야 할까요. 나는 고단할 것이 틀림없는 우리의 마지막 시즌이, 그간 해 왔던 작업의 뜻 깊은 마무리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 hsjssu@osen.co.kr

[사진] tvN 제공, ‘어쩌다사장3’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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