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경제난·美 정치 상황 맞물리며 ‘리커창 대망론’ 솔솔
바이든, 중간선거 승리 위해 은밀히 리 지원 가능 분석도
(서울=연합뉴스) 정열 기자 = 지난달 28일 중국 톈진(天津)시 당 기관지 천진일보 웨이신(微信·중국판 카카오 스토리)에는 짤막한 부고가 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신화=연합뉴스 자료사진] |
올해 59세인 랴오궈쉰(廖國勳) 톈진시장이 전날 돌연 숨졌다는 내용이었다.
웨이신에 실린 부고는 "27일 중공 톈진시 부서기 겸 시장 랴오궈쉰 동지가 돌발 질병에 응급조치도 소용없이 불행히 세상을 떴다. 향년 59세"라는 내용이 전부였다.
‘시자쥔'(習家軍·시진핑 사단)으로 분류되는 랴오 시장의 사망 소식은 이튿날 신문 지면에는 보도되지 않았고, 톈진시 정부 홈페이지에서 그의 이름은 재빨리 지워졌다.
랴오 시장의 돌연한 죽음이 놀라웠던 건 그가 오는 10월 열릴 예정인 중국 공산당 20차 당 대회에서 리훙중(李鴻忠·66) 톈진 당 서기 후임으로 권력 서열 25위권인 정치국위원 진입을 노리던 다크호스였기 때문이다.
베이징 정가에서는 랴오 시장의 사망으로 차기 당 정치국 인사를 둘러싼 경쟁이 한층 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 中 정가에서 낯설지 않은 의문사…리커창 반격 시작됐나
중국 정치권에서는 주요 인물의 돌연사나 의문사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2019년 10월 제19기 4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4중전회) 폐막일에 돌연사한 런쉐펑(任學鋒, 1965~2019) 충칭(重慶)시 부서기가 대표적이다.
당시 충칭시 당국은 런 부서기가 급환으로 숨졌다고 발표했지만, 홍콩 명보는 그가 비리에 연루돼 조사를 받던 중 베이징 징시(京西) 호텔에서 투신자살했다고 보도했다.
런 부서기는 충칭시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의 최측근이자 차기 최고지도자로 유력한 천민얼(陳敏爾) 당서기와 탕량즈(唐良智) 시장에 이은 3인자였기에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던진 충격은 컸다.
런 부서기의 사례처럼 중국에서는 공산당 고위 간부가 비리 혐의로 조사를 받다가 자살하는 경우 이유를 밝히지 않고 돌연사로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50대의 젊은 나이에 ‘돌발 질병’으로 숨졌다는 랴오 시장의 죽음이 석연찮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달 18일 뉴스위크 일본판은 부패 추방을 목적으로 리커창(李克强) 국무원 총리가 주도해 만든 ‘염정공작회의'(廉政工作會議)가 지난달 25일 열린 지 이틀 만에 랴오 시장이 돌연사했다고 전했다.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 [신화=연합뉴스 자료사진] |
시진핑파 고위 관리가 연루된 부패 의혹이 랴오 시장 돌연사의 배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고 이 잡지는 덧붙였다.
리 총리가 주도한 부패추방 운동이 ‘시자쥔’을 정조준했고 이 과정에서 랴오 시장이 희생양이 됐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최근 베이징 정가 안팎에서 흘러나오는 리 총리의 부상과 무관치 않다.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서열상 2인자인 리커창은 3연임을 노리며 국정 장악력을 확대해온 시진핑의 기세에 눌려 오랫동안 ‘잊혀진 총리’로 불렸다.
그러나 최근 시 주석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며 내부 불만이 커지고 있는 데다 경제 침체까지 심화하면서 3연임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9년여간 시 주석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유명무실하던 총리의 권한이 최근 한 달 사이 격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시 주석 중심의 권력 체계 속에서 ‘잊혀진 2인자’로 평가받던 리커창 총리가 최근 존재감을 다시 드러내고 있다며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중국 경제가 휘청이는 와중에 리 총리 주도의 거시경제 정책을 의미하는 ‘리코노믹스’가 귀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고 전했다.
지난 14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2면을 거의 통틀어 리 총리의 연설문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가 읽힌다.
인민일보는 지난달 25일 있었던 국무원 염정공작회의 연설내용을 이날 1만자 가까운 분량으로 비중 있게 전했다.
이 보도 이후 공산당 내부가 크게 술렁였다는 게 니혼게이자이의 설명이다.
이 신문은 "시 주석의 강력한 권력과 균형을 맞추는 움직임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 인플레 잡기 위해 中 도움 절실 바이든, 리커창 파벌 지원할까
최근 급부상한 ‘리커창 대망론’은 오는 11월 중간선거 승리가 절실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나와 주목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40년 만에 최고치까지 치솟은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민주당 정권을 향한 미국 유권자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중간선거 패색이 짙은 상황이다. 중간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인플레이션을 잡아야 하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는 이른바 ‘빅스텝’을 단행했지만 부작용으로 증시가 폭락하고 기업 실적이 악화하면서 유권자들의 불만은 더 커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기간에 발표된 최신 여론조사에서도 그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
AP통신이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NORC)와 함께 지난 12∼16일 미국 성인 1천172명을 대상으로 시행해 20일(이하 현지시간)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39%에 그쳤다. AP-NORC 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40% 밑으로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1일 실시된 호주 총선에서 21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불만이 기폭제가 돼 8년 9개월 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진 것도 바이든에게는 상당한 충격이 될 수 있다.
뉴스위크 일본판은 바이든 행정부가 중간선거 승리를 위해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려면 중국의 도움이 필수적이라며, 중국을 자유경제로 되돌려놓기 위해 리 총리의 파벌을 비밀리에 지원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이 고유가와 물류난, 생산 차질 등인데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는 중국의 도움 없이는 이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마오주의로의 회귀를 꿈꾸는 시진핑 대신 자유경제 체제를 지지하는 리커창을 막후에서 지원해 ‘제로 코로나’ 정책을 풀고 중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정전을 중재하도록 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이 잡지는 설명했다.
뉴스위크 일본판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바이든 대통령이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출범과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 협의체)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했지만 진짜 목적은 중국 봉쇄가 아닐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간선거 패배에 직면한 바이든이 지금은 중국 봉쇄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잡지는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해 중간선거 패배의 위기에 직면한 바이든은 지금 중국 봉쇄에 신경 쓸 여력이 전혀 없다"며 "그는 오히려 중국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며 일본 방문의 목적은 다른 데 있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passi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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