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방송투데이 맛집]돼지고기 김치찌개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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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sar99



[더,오래] 한재동의 아빠는 밀키트를 좋아해(1)
밀키트를 만들어 먹는 상황은 매우 다양하다. 혼밥을 해도 이왕이면 제대로 된 요리를 먹고 싶을 때, 밀키트에 나오는 유명 레스토랑에 가고 싶지만 시간도 돈도 여의치 않을 때, 정해진 양의 재료만 구매해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고 싶지 않을 때. 그리고 나의 목적은 요리실력은 없지만 다양한 음식을 가족과 함께 만들어 먹으려는 것이다. 다양한 제조사에서 다양한 음식의 밀키트가 쏟아지고 있다. 밀키트로 만들려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와 그걸 만들어 먹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담으려고 한다. 〈편집자〉

청주식 짜글이

나는 고향이 청주다. 태어나기는 서울이다. 이것 때문에 어린 시절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고향에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는데 출생지, 성장기 연고지, 부계 선대의 고향 등이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살았는데, 내 고향을 청주라고 하시는 할아버지가 이해가 가지 않았던 적도 있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사람마다 기준에 따라 자기 고향을 정하면 되겠다고 생각했고, 이제 누가 물으면 고향이 청주라고 말한다.

요즘 세상에 누가 고향을 물어보겠나 싶지만, 생각보다 말할 기회가 많다. 그리고 고향이라고 하면 그곳의 모든 것을 꿰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질문이 많이 들어온다. 특히 맛집에 관한 질문이 많다. 내가 청주에서 보낸 10년 안 되는 기간으로는(그것도 아주 오래전) 이런 질문에 좋은 답변을 주기 어렵다. 내가 기억하는 청주의 맛집은 오성당이라는 옛날 분식집과 쫄쫄호떡뿐이다. 유년 시절 기억이니 초등생 입맛에 맞는 음식밖에 모른다.

그렇다고 잘 모른다고 말하기에는 왠지 자존심이 상한다. 물어본 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사실 나도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추천해 줬다. 이렇게 찾아서 추천해 주다 보니 나도 먹고 싶어져서 청주에 내려갈 때면 추천해줬던 집에 뒤늦게 찾아가 보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것이 바로 ‘짜글이’였다.

백종원 3대천왕에 나왔던 청주식 짜글이. [사진 만개의 레시피]

왜 어렸을 적 청주에 살 때는 짜글이를 잘 먹지 않았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생각해보면 간단했다. 초등학생이 느끼기에는 맵고 짠 음식이겠지만, 성인이 되어 술도 마셔보고 해장도 해보고 나니 이만한 술안주이자 해장음식이 없다. 꼬마일 때는 알 수 없었던 인생의 깊은 맛을 어른이 되고 귀향하고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청주에 가는 친구가 맛집을 물어보면 짜글이를 추천한다. 출장이든 여행이든 밤에 한잔하려고 물어본 것일 테니 말이다. 더구나 짜글이는 서울에서는 찾아보기 힘드니 대부분 좋아한다. 친구들에게는 마치 짜글이 전문가 인 양 추천했지만, 사실 아내가 왜 짜글이냐고 물어보는데 막상 답도 못 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찌개와 볶음의 중간단계로 밥에 비벼 먹기 좋은 음식이라고 한다. 실제로 돼지고기가 잔뜩 들어간 김치찌개를 졸여서 국물이 자작해진 것에 가까운 비주얼이다.

가끔 서울에서도 청주 짜글이가 그리울 때가 있었는데, 어느 날 마트에서 짜글이 밀키트를 발견했다. 그것도 심지어 청주식이라는 이름이 붙은 짜글이였다. 돼지고기가 많이 들어가서인지 가격은 만 원 중반대로 생각보다 비쌌지만, 고향에 대한 향수인지 아니면 그냥 얼큰한 국물에 흰밥을 비벼 먹고 싶은 식욕 때문인지 구매해 버렸다.

레시피

① 준비되어 있는 야채(양파 / 대파 / 깻잎 / 청양고추 / 마늘)을 물에 씻어 물기를 뺀다.
② 팬에 양념된 고기 / 묵은지 / 소스 / 양파 / 대파에 물 400ml를 넣고 끓인다.
③ 물이 끓는 시점에서 5분정도 더 졸인다.
④ 청양고추와 마늘은 편으로 썰고, 깻잎에 싸서 먹는다.

적혀진 레시피대로 조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국물이 많아 좀 더 졸여야 했다. 아무래도 가스레인지나 인덕션 등 조리 환경의 차이가 큰 것 같았다. 국물은 얼큰했고 고기도 매콤하게 양념이 잘 되어 있었으며 묵은지도 제대로 시큼했다. 묵은지가 먹기 좋게 잘려져 있어서 좋았고 고기양도 푸짐해서 좋았다. 다만 내가 청주에서 먹었던 짜글이에는 감자와 두부가 있었던 것 같은데, 밀키트에는 그게 없다. 차라리 사이드로 주는 깻잎과 마늘, 청양고추 대신 감자와 두부를 넣었으면 좋았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고기가 푸짐해서 좋았던 짜글이 밀키트. [사진 한재동]

묵은지가 얼큰하게 끓여진 국물을 먹다 보니 라면 사리가 떠올랐다. 같이 맛보던 아내도 동시에 라면 사리를 외쳤다. 그런데 문득 ‘라면 사리가 들어가면 그냥 돼지고기 곱빼기 추가한 김치찌개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짜글이건 돼지고기 김치찌개건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법으로 정해놓은 것도 아니고 그저 매콤하니 이마에는 땀이 뻘뻘 나고 먹고 나니 배가 든든하니 점심으로 최고의 한 끼였다.

고향이 청주지만 인터넷으로 청주 맛집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청주 음식을 하나 더 추천한다면 ‘파무침 냉동 삼겹살’을 꼽겠다. 서울에서는 냉동 삼겹살이 유행하지만, 청주에서는 수십 년 된 인기 음식이다. 매콤한 파무침에 냉동 삼겹살을 싸 먹는 것도 일품이지만 백미는 볶음밥이다. 어릴 적 화려한 손놀림으로 밥을 볶아주던 아르바이트 형님이 그렇게나 멋져 보였다. 지금은 어리지만 언젠가 딸이 매운 것을 먹게 된다면 가장 먼저 해줄 음식이다. 그나저나 딸의 고향은 그럼 청주일까 서울일까가 궁금하다. 그냥 딸이 정하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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