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나는 여성이고, ‘병역거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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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sar99

[엄문희 강정평화네트워크 활동가]
5월 15일은 ‘세계병역거부자의 날(International Conscientious Objector’s Day)’입니다. 이날은 폭력에 가담하지 않기 위해 전쟁을 거부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날이며, 전쟁에 동원돼 이웃을 살해하고 세상의 평화를 훼손하는 일에 가담하지 않으려는 개인의 양심에서 시작됐습니다.

‘여성병역거부선언’은 이러한 평화운동의 맥락에 동의하며 군사주의가 ‘정상성 이데올로기’로 선점한 ‘기존의 의미체계’를 비판하고, 권력이 부여하는 ‘병역’의 사회적 의미를 고찰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타자화되어온 여성들이 병역을 거부하는 운동입니다. 일상에서 재현되는 모든 종류의 구조적 억압과 폭력에 저항하기 위한 운동이자 특히 구조적으로 전쟁을 ‘평화를 위한 수단’으로 강화시켜온 군사주의와 가부장 문화 자체를 비판하며 ‘무엇이 전쟁이고 무엇이 폭력인가?’를 질문하는 운동입니다.

한국에선 2018년에 처음 여성으로서 병역거부 선언이 있었고 이어서 2019년에 강정마을에 사는 세 여성이 병역거부를 선언하였습니다. 그리고 2022년에 네 명의 여성들이 병역거부선언을 하게 되었습니다.필자

“강정마을주민이며 강정평화네트워크 활동가다. 강정해군기지 준공식 날 강정으로 이주했다.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여성을 기록하고, 인간에 의해 타자화된 자연과의 관계를 응시하며 살아간다. 2019년에 마을 친구 둘과 함께 여성으로서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나의 모든 활동은 병역을 거부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때 병역이란, 인간을 포함해 존재하는 모두를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모든 종류의 폭력을 말한다.” -엄문희 강정평화네트워크 활동가 소개

©연합뉴스
나는 병역거부자다. 나는 ‘여성병역거부선언자’다. 여성 병역거부 선언은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의 맥락에 동의하고 군사주의가 ‘정상성 이데올로기’로 선점한 ‘기존의 의미체계’를 비판하며, 권력이 부여하는 ‘병역’의 사회적 의미를 고찰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타자화되어온 여성들이 병역을 거부하는 운동이다.

일상에서 재현되는 모든 종류의 구조적 억압과 폭력에 저항하기 위한 운동이자 특히 구조적으로 전쟁을 평화를 위한 수단으로 강화해온 군사주의와 가부장 문화 자체를 비판하며 ‘무엇이 전쟁이고 무엇이 폭력인가?’를 질문하는 운동이다. 한국에선 2018년에 처음 여성 병역거부 선언이 있었고, 이어서 2019년에 강정마을에 사는 세 여성이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나는 2019년 그 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2022년 네 명의 동지 여성들이 병역거부선언을 하게 되었다.

내가 병역문제의 당사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 병역 당사자임을 선언했던 동기는 강정마을에 폭력적으로 들어선 제주해군기지와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였다. 그간 내가 만나온 국가는 정의로운 절차와 합리성을 따져 묻는 시민의 질문을 묵살하고, 힘을 총동원해서 통치사업을 강행하고, 특수법인화와 민영화 뒤에 숨은 그림자가 되어 정작 필요한 곳에선 부재를 반복하기도 했다. 더욱이 국가는 무기를 독점하고 그 독점된 무기를 기반으로 정의를 정의했다. 나는 바로 그렇게 해서 파괴된, 혹은 새롭게 만들어진 ‘강정마을’의 ‘주민’이며 ‘세월호 이후’를 살아가는 ‘재난 공동체’의 일원이고 폐허를 응시하며 살아가는 ‘여성’이다.

일련의 참상을 통해 드러난 국가의 모습은 우리의 상식과 매우 달랐다. 강정 해군기지 건설과 세월호 참사가 드러낸 국가는 심각하게 폭력적이었고 위험할 정도로 무능력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시민의 자각을 추동하기도 했다. 국가를 의심하는 시민들에 의해 새로운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국민들이 침몰할 때는 전혀 존재감 없이 무능했던 국가가, 시민들이 새로운 질서를 구성하기 위한 정치적 투쟁을 시작하자 갑자기 매우 유능해지기 시작했다. 국가의 존재 방식에 질문하는 시민들의 집회를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마구잡이로 연행하며 공안 통치의 능력을 과시했던 것이다.

그 일은 나에게 비참한 ‘현재를 구성하는 과거’를 응시하게 했고, 내가 살아가는 ‘세계를 구성하는 구조’를 의심하게 했다. 우리 세계는 대체 어떻게 만들어졌기에, 도대체 어떤 체계로 작동되기에 이런 일들이 가능했는지 밝혀내고 그것이 더는 연장되지 않게 싸워야 했다. 그것은 내면화되었던 기존의 가치 체계를 스스로 허물어야하는 험난한 과정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나는 강정마을 주민이 되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로 파괴된 구럼비 해안과 강정 바다. 구럼비에는 멸종위기 생물들을 비롯, 수많은 생물들이 살았다.© 조성봉, 2011
강정마을에서 마주한 현실은 겹겹 단단한 ‘식민지’였다. 해군기지를 통해 얻게 된 이 깨달음을 이야기하려면 어마어마한 눈물이 필요하다. 높게 둘린 유무형의 담장, 이쪽과 저쪽으로 호명되는 경계는 역설적으로 반드시 넘어야 하는 ‘선’으로 다가왔다. 군대가 작동되고 유지되는 질서방식 자체가 이미 제국주의적 방식이었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식민지를 낳았다.

제국주의 연구는 ‘식민지배자들은 자신들의 권위와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늘 열등한 타자(the Other)를 필요로 한다’고 한다. 열등하다고 결정한 상대를 통해 우월감을 확보함으로써 지배를 정당화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의견을 무시하거나 희생시키는 일도 정당해지기 때문이다. 대화하고 협력할 수 있는 당사자성을 임의로 구분하고, 그 바깥의 존재들을 고립시켜 분할통치하고, 질문하는 사람들을 보이지 않게 제거하려는 시도 자체가 이미 국가권력의 우월감에서 비롯된 타자화의 광경이다.

따라서 식민지나 제국주의 같은 이름들은 어떤 사건이나 영토적 문제로 남겨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이름들은 인류사를 통틀어 반복적으로 재현되고 강화되어온 역사적 혐오가 현재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를 확인하는 이름으로 환기되어야 한다. 강정의 구럼비 파괴는 단순한 생태파괴의 사건이 아니라 이 세계를 지배해 온 가부장제 군사주의의 실력행사의 결과였으며, 세월호 당시의 구조 실패 역시 국가 무능력이 양산한 폭력의 연결고리 안에 존재한다.

기후위기를 초래한 원인을 에너지로 국한해 이를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파하며 기후위기를 마치 먼 나라 북극곰의 위기로 둔갑시키는 시키는 시도, 혹은 소수자의 권리를 나의 안락함과 맞바꾸는 시도 등을 통해 인간 개개인 역시 하나의 제국이 되어간다. 나의 권리가 다른 존재의 착취를 수반하여 운행되었음에도 아직 아픔을 느끼지 않는다면, 이미 나는 제국주의자다.

이런 ‘물음’ 속에서 공기처럼 존재하는 착취에 반대하는 도약적 물음, 즉 “병역을 거부한다”는 선언은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제국주의를 반성하고 식민지에 반대하며 누구도 타자로 두지 않겠다’는 다짐이 된다. 이것은 구조에 협력하고 동원됐던 과거의 자신과 결별하여 폭력에 가담하지 않으려는 폭력 거부 선언으로, 특히 기존 의미체계가 축적해온 경계 밖에 존재하는 ‘여성이라는 타자’가 행하는 질문을 통해 ‘병역거부는 군대징집에 반대하는 남성들만의 투쟁이 아니다’라는 각성을 일으키는 선언이다. 또한 이것은 권력이 제한하는 의미체계를 넘어 일상을 지배하는 모든 형태의 군사주의에 맞선 모두의 싸움이며, ‘무엇이 전쟁인가’를 질문하는 일이다.

나에게 ‘여성병역거부선언’은 폭력인 줄도 모르고 폭력에 협력해온 나 자신과 일상에 파고든 전쟁을 응시하는 일이며, ‘폭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고 깊은 질문에서 시작된 일이다.

그래서 일상성으로 작동하는 모든 위계를 감지하고 그것이 불편할지라도 말하는 활동, 모든 차별에 저항하며 장애와 성소수자를 생산하는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항의하는 활동도 병역을 거부하는 행동과 같은 맥락에 있다. 종을 넘어 모두의 서식지를 지키기 위한 운동 역시 ‘어떠한 구조적 폭력에도 동원되지 않겠다’는 서사 안에 존재한다.

바로 이 지점을 통해 ‘여성’이라는 기표 역시 정상성 이데올로기가 강제하는 지정된 의미를 이탈해야 하는 ‘운동의 언어’가 된다. 그래서 여성의 병역거부 선언은 질문의 방향을 새롭게 구성하는 운동이다. 왜냐면, 주어진 기존질서가 의심되어야 새로운 질서. 새로운 의미가 들어설 자리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병역거부 선언은 필연적으로 ‘광경 너머의 진실을 말하는’ 운동이 된다. 병역이 총을 들고 군사훈련에 동원되고 전쟁에 군인으로 참전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일은 ‘세계의 진실을 규명하는’ 운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20년 7월 18일, 서애 유성룡 이지스 구축함과 충무공 이순신 구축함이 하와이 근해에서 열릴 미국 주도 다국적 환태평양합동훈련(림팩RIMPAC)을 위해 제주해군기지에서 출항했다. 사람들은 림팩 반대와 제주해군기지 폐쇄를 외쳤다. 제주는 진정 세계 평화의 섬인가? © 방은미, 2020
5월 15일은 ‘세계병역거부자의 날(International Conscientious Objector’s Day)’이다. 이날은 폭력을 거부하며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기억하는 날이며, 전쟁에 동원되어 이웃을 살해하고 세상의 평화를 훼손하는 데 가담하지 않기 위해 징집과 훈련을 거부하는 개인의 양심을 환기하는 날이다.

절대다수가 의심 없이 참여하고 사회적 명분까지 충분히 쌓인 일(병역)을 거부한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자신의 삶이 불편해지는 것을 넘어 모욕과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을 알면서도 결코 가담하지 않는 일이다. 이 세계는 이 일에 대해 아직 논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성병역거부선언은 바로 이 ‘굳게 닫힌 침묵을 여는 질문’이기도 하다.

전쟁을 ‘국가 간 무력충돌’이라는 개념으로만 의미화하고 ‘병역’을 ‘군대’에 한정지어 ‘폭력’을 볼 수 없게 하는 모든 시도에 저항하는 것, 군사주의와 국가권력이 강제하는 눈높이를 이탈하는 것, 그것이 병역거부다.

기후위기를 통해 환기되고 있는 멸망의 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지속가능한 성장을 약속하는 정치 때문에 위기를 느끼는 당신, 그런 논리로 곳곳에서 강행되는 신공항에 반대하며 정의로운 체제전환을 제안하는 당신, 삶의 원형을 돌이킬 수 없게 파괴하는 난개발 현장에 드러누워 함께 하늘을 보고, 진상이 규명되지 않는 사회적 참사를 떠올리는 당신, 일상의 모든 차별에 저항하며 밀려나는 소수자와 장애인과 비인간 존재 모두의 아픔에 공명하는 당신은 이미 병역거부자다. 나도 병역거부자다.

[엄문희 강정평화네트워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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