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편성인데 야구 때문에 결방이라니, 대체 누가 결정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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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sar99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KBS 예능 <골든걸스> 2화에 박미경 씨가 걸그룹 아이브의 ‘I’am’을 불러보는 장면이 있었다. 첫 연습이고 평소 접해보지 않은 요즘 곡인지라 음이며 박자가 흔들릴 밖에. 여섯 명이 부르는 노래라서 힘들 수밖에 없지 않느냐, 옆에서 위로를 하자 박미경 씨가 단호하게 한 마디 한다. 그건 비겁한 변명이라고, 핑계일 뿐이라고. 노래에 있어서 어떠한 변명도 용납이 안 된다는 얘기다. 반가웠다. 이런 어른을 방송에서 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어른이 한 분이 아니라 무려 네 분이나 나온다.

<골든걸스>는 JYP 수장 박진영이 프로듀서가 되어 신효범, 박미경, 인순이, 이은미, 네 중견 가수로 걸그룹을 만들어 선보이는 프로그램이다. 8부작이고 K-팝 스타일 곡에 퍼포먼스까지 곁들인 엔딩 무대가 예상된다. 사실 박진영이 중견 가수로 구성된 걸그룹을 기획 중이라 했을 때 기대감이 없었다. 지금까지 해온 여러 프로그램을 봤을 때 박진영은 어디에서든 자신이 돋보여야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KBS이지 않은가. 이번엔 가수들의 <같이 삽시다> 찍으려는 거야? 했다. 예전 김청 씨와 이경진 씨처럼 센 언니들 기 싸움하는 거 보여주겠다는 거? 그러나 <골든걸스>는 달랐다. 이 네 분이 박진영을 위해 기꺼이 재료 노릇을 자처할 분들도 아니고 제작진이 화제성을 위해 편집으로 장난을 친다? 그걸 묵과할 분들이 아니지 않나.

박진영이 섭외를 위해 설득에 나섰고 어렵사리 네 분이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각각 한 곡씩 미션이 주어졌는데 신효범 씨는 트와이스의 ‘Feel special’, 박미경 씨는 아이브의 ‘I’am’, 인순이 씨가 뉴진스 ‘Hype boy’, 이은미 씨는 청하의 벌써 12시. 이 무대, 토 달 필요 없이 꼭 보시길 권한다,

그리고 박진영이 완벽한 호흡을 맞추고자 합숙을 제안했다. 처음엔 모두들 난색을 표했는데 박미경 씨가 넌지시 ‘미리 걱정은 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해보고 아니면 그만두면 되는 거지 왜 미리 겁을 내느냐 이거다. 정이 들고 싶단다. 이분 마인드 멋지다! 어쨌든 합숙에 들어갔고 둘씩 팀을 이뤄 이번엔 듀엣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합숙이니까 마당에서 지글지글 고기 굽거나 PPL로 치킨이며 떡볶이 샌드위치 이런 거 한상 가득 차려놓고 또 먹방하는 거 아닌가? 했는데 웬걸, 저녁 식사가 유기농 쌈밥이었다. 뭐가 달라도 다른 <골든걸스>.

박미경, 인순이, 이은미 씨는 무대로만, 가수로만 만났지 어떤 성향인지, 성품인지는 모른다. 그와 달리 신효범 씨는 우리가 좀 알지 않나. SBS <불타는 청춘>에서 소탈한 면면을 보여준 바 있으니까. 그리고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가장 연장자였는데 알고 보니 오래 전부터 허리며 관절이 안 좋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몸 사리지 않고 그렇게나 열심히 뛰었던 것이다. 남다른 근성이다. 대다수의 예능 프로그램이 중장년층 여성을 소비하는 방식이 주책없다는 거 아닌가. 말 많고 우기기 잘하고 무례하고. 솔직함을 앞세워서 상처 주고. 심지어 젊은 남자 연예인 나오면 식스팩 보여 달라고 조르고 만져보기까지 하지 않나. 나이 들면 드세다 못해 상스러워진다,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젊은이들이 중장년층 여성들을 그리 볼까 걱정 또 걱정인지라 부디 <골든걸스>가 그와 같은 편견을 깨줬으면 좋겠다. 갈등이 생겼을 때, 의견이 대립될 때 어떻게 풀어가는 것이, 어떻게 조율하는 것이 현명한지 <골든걸스>가 보여주길 기대한다.

그런데 아뿔싸, 이번 주 <골든걸스>가 결방이란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경기 중계가 있다나. 본래 방송 시간이 금요일 10시이지만 이날은 9시 50분부터 <신상출시 편스토랑>이 방송될 예정이라고. <골든 걸스>, 모처럼 초반부터 시청률이 잘 나오고 있다. 첫 화 4%, 2화 5%, 아시다시피 금요일 밤이 시청률 전쟁터이지 않나. 화제작 MBC 드라마 <연인>도 동시간대이니 그 와중에 선방을 한 셈이다. 이렇듯 입소문이 절실한 <골든걸스>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편스토랑>을 끌어다 놓는 KBS,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내 마음 같아서는 일요일 저녁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자리에 <골든걸스>를 가져오면 좋겠다.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는 KBS 이미지만 깎아 먹고 있건만, 가만 보면 KBS에 X맨이 여럿 있는 모양이다.

제작진이 양혁 PD, 최문경 작가. 양혁 PD는 전작이 <뮤직뱅크>다. KBS가 타방송사에 비해 음악 프로그램이 많지 않나. <열린 음악회>, <가요무대>, 또 <더 시즌스>도 있고. 그래서인지 음악에 관한 한 아무래도 만듦새가 다르다. 어쨌든 양혁 PD, 최문경 작가, 좋은 프로그램 만드는 제작진으로 기억해두자!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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