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보다 센 이곳에 퓨처밸리를? 태연은 어쩌다 사기 당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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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sar99

[아무튼, 주말] 기획부동산이 사들였다는
비오톱 1등급이 뭐길래

기획부동산 업체가 소녀시대 태연을 포함해 피해자 수백 명에게 개발 호재가 있다고 속여 판 경기도 하남시 모처.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제2의 강남” ”3호선·5호선·9호선 노선 연장 계획“ ”신생 첨단 기업 입주해 퓨처밸리 조성 예정”.

홍보 문구만 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금싸라기 땅이지만 실상은 개발이 불가능한 야산이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지난달 29일 비오톱 1등급 토지를 비롯해 개발이 어려운 땅을 투자 가치가 높은 땅인 것처럼 속여 판 혐의로 기획부동산 업체 대표 등 4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피해자만 전국 3000명이 넘고 피해 금액은 2500억원에 달했다. 피해자 중엔 걸그룹 ‘소녀시대’ 태연과 제약사 회장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토지 투자 강의를 하는 정천우 공인중개사는 “소녀시대 태연씨가 산 땅은 개발제한구역과 보전 산지로 지정된 데다 임야 경사도도 가팔라 애초에 건물을 지을 수 없는 땅”이라면서 “투자 목적으로 샀다기보단 토지에 무지해 사기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비오톱이 뭐기에

비오톱은 동식물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생물 서식지를 뜻한다. 독일 베를린시가 도시 생태계 보전을 위해 제작한 비오톱 지도를 참조해 서울시는 2000년부터 5년마다 유형별·등급별로 비오톱을 분류해 지도에 표시한 도시 생태 현황도(비오톱 지도)를 만들어왔다. 지자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서울시의 경우 비오톱 5등급 중 1등급으로 지정될 경우, “절대적으로 보전하여야 한다”는 시 조례에 따라 개발을 제한한다. 이 때문에 부동산 업계에선 “그린벨트보다 강력한 규제” ”비오톱 1등급 해제는 로또 당첨보다 어렵다”는 말까지 나온다.

인터넷으로 토지이용계획원만 확인해도 비오톱 1등급으로 지정된 토지인지 확인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기획부동산 사기가 반복되는 이유는 “미공개 개발 정보가 있다”고 속이기 때문이다. 조세영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20년 경력의 부동산 전문가 그룹이 분석했는데 이 땅은 개발이 안 될 수 없다’는 식의 말에 넘어가는 것”이라면서 “토지이용계획원을 확인해보고 비오톱 1등급으로 지정돼 있다면 시·군·구청에 전화해 용도 변경 계획이 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고 했다.

기획부동산 업체가 소녀시대 태연을 포함해 피해자 수백 명에게 개발 호재가 있다고 속여 판 경기도 하남시 모처.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비오톱이냐, 아니냐

서울시와 함께 비오톱 지도를 제작해온 서울연구원 측은 비오톱과 부동산 이슈가 엮이는 데 난색을 보였다. 송인주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비오톱 지도는 도시 관리나 계획에 필요한 기초 자료로 쓰려는 취지에서 제작됐는데, 개발 제한이 따르다 보니 토지 소유자 입장에선 규제처럼 받아들여 안타깝다”면서 “비오톱 등급은 고정값이 아니라 5년마다 생태 조사를 통해 바뀔 수 있다”고 했다.

드물지만 비오톱 등급이 조정되는 사례도 있다. 올해 초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 종로구 구기동, 서대문구 홍제동 등의 일부 토지는 비오톱 1등급에서 제외됐다. 종로 구기동의 한 주택은 담장 안에 나무들이 아카시림으로 평가받아 비오톱 1등급으로 지정됐으나 소유주의 이의 신청을 받아 확인한 결과, 조경수로 밝혀져 1등급 토지에서 제외됐다. 서울시 측은 “이의 신청이 들어올 경우 현장 조사를 나가 식생 변화를 살펴보고, 산지관리법 위반 사항은 없는지 확인을 거쳐 등급 조정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서울시가 지정한 비오톱 1등급은 아니지만, 환경단체에서 비오톱 1등급 토지라 평가하기도 한다. 정부가 작년 ‘8·4 공급 대책’ 때 대규모 아파트를 짓겠다고 발표한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이 그렇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은 “태릉골프장 환경 생태를 조사한 결과, 전체 면적 73만㎡ 중 21.1%가 비오톱 1등급 지역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수령이 80~200년 된 소나무숲이 분포하고, 쇠딱따구리 등 야생 조류와 원앙·솔부엉이 등 천연기념물이 다수 발견됐기 때문이다. 김동언 생태도시팀장은 “태릉골프장이 산과 아파트로 꽉 막힌 서울 동북부의 바람길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곳마저 아파트를 세워버리면 더운 공기가 빠져나갈 수 없어 열섬 현상이 극심해질 수 있다”면서 “기후 위기가 심각해질수록 산림 비오톱의 기온 저감이나 탄소 흡수 기능이 절실해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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